#. 5 사실은 질투가 난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온다. 기름값 좀 아껴보겠다는 가장의 노력이다.
덕분에 엄마와 나는 둘이 오붓하게 살고 있다.
하나뿐인 아들놈은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가셨고 큰딸은 시집을 갔다.
20대엔 내가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겁도 없이 워킹홀리데이니 배낭여행이니 하며
집 밖에 떠돌기 일쑤였는데 나이를 먹고 나니 내가 여적 엄마 옆에 찰싹 붙어있게 될 줄이야.
엄마는 자주 시집가라 채근하면서도 그나마 니가 집에 있으니 다행이란 말도 곧잘 한다.
나는 후자가 더 진심이라 생각한다.
차가 생긴 후 엄마를 더 챙기려고 하고 있다.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 해주었듯이.
아픈 후 엄마도 나를 더 신경쓰고 챙기려 애쓴다.
둘이서 투닥 거리면서도 어떨 땐 밥상머리에 앉아 친구처럼
아니 친구에게 조차 하지 못한 것까지 긴긴 수다를 늘어놓는다.
이만한 친구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다 들어줄 수 있는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세삼든다.
엄마는 엄마 얘기 나는 내 얘기.
그리고 마음에 담아두고 어디 가서 꺼내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
엄마는 할머니다.
언니에겐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예쁜 딸이 있다.
이름은 서아. 너무 예쁘다.
쳐다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난다.
종종 서아를 보고 힐링한단 말을 하곤 했다.
그런 나에게 언니는 틈틈이 영상통화로 예쁜 조카 모습을 보여주기도 동영상 사진도 보내주곤 한다.
조카. 너무 사랑스럽다.
그런 모습이 엄마에겐 짠했을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넌 늘 욕심이 많았다고 말하는 엄마.
'넌 떡을 쥐고 먹어도 늘 양손에 들고 먹었어~'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내가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해 또는 잃어버린 것에 대해 얼마나 속상해할지 엄마는 알았을 거다.
자랑거린 아니지만
어릴 때 술 먹고 정신줄을 놓고 가방을 잃어버리고 들어온 적이 있다.
가방을 잃어버리다니.
가방 안엔 돈도 돈이지만 내가 소중히 하는 물건들이 꽤 들어 있었다.
끄적댄 메모장. 엠피쓰리. 통장. 지갑 등등
난 마음속에 내 것이라고 저장된 것들은 애착이 강한 편이다.
그걸 알았을 때 엄마로서는 폭풍 잔소리를 쏟아내고
몽둥이 들고 정신 차리라며 혼낼 수도 있었을 거다.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내가 어떤 맘일지 알아서 아마 더 속상해했을 거다.
많은 말없이 날 위로해주고 따끈한 카레를. 맛있는 밥을 차려주었다.
별말 안 해도 내가 얼마나 속앓이를 하고 있을지 알았을 거다.
속으로 얼마나 안쓰러워했을까.
그렇게 나를 너무 잘 아는 엄마의 방식으로 나를 따습게 위로해주었다.
어느 날 밥상머리에 앉아 한창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엄마에게 말했다.
지난번 남자 친구와 쇼핑몰을 구경하다가 남자 친구가 예쁜 아기 신발을 보고
나중에 조카 사주면 되겠다 라고 말을 했는데 그게 너무 샘이 났다고.
내 아이가 있었다면 누릴 수 있었을 좋은 것들을 다른 아이에게 해주어야 한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고.
질투가 났다고.
언니의 딸인데도 조카는 그저 조카인가 보다고.
남은 남이라고..
너무 예쁜 조카를 남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눈물이 났다.
사실은 그게 내 진심이었다.
내 진심이 나를 너무 슬프게 만들었다.
언니가 알면 속상할 거다. 그렇지만 사실은.
질투가 났었다 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내가 더 이상은 가질 수 없는 그 평범한 풍경이.
진심이 때로는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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